학회원들의 글

2023 합정만화상 선정작 웹툰 <순정 히포크라테스> 리뷰 (조경숙)

합정만화연구학회 2023. 12. 31. 00:00

망가진 세계의 틈새에서 사랑을 말하는 법
: 웹툰 <순정 히포크라테스>

 

웹툰 <순정 히포크라테스> 썸네일 이미지 (이미지출처: 카카오웹툰)

 

세계는 끔찍하게 망가져 있다. 특히 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한 모습으로. 사람들은 1초도 채 되지 않는 영상에서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을 잡아내어 페미니스트라 밝힌 이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짧은 머리를 하고 있으니 페미니스트라며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채용에서는 남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도 떨어지기 십상이고, 애써 입사하더라도 승진하기 어렵다. 잘 알려진 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곳도 아직은 많다. 우리 사회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여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모양으로 굳어져 있다. 여자들은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독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관성과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도 싸워야 한다.


웹툰 <순정 히포크라테스>의 '사해'는 할머니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할머니는 그녀를 그녀의 친오빠인 '사달'과 오랫동안 차별 대우해 왔다. '보듬'에게 '지안'도 그런 존재다. 보듬은 지안을 한없이 아꼈지만, 지안은 보듬을 자기 편한 대로 휘두르기 바쁘다. 그럼에도 사해가 할머니를, 보듬이 지안을 사랑한 건 그저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사해에게는 할머니가, 보듬에게는 지안이 '사랑하지 않지만 존재하게 만드는'(시즌3 18화 중)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여자에게 한없이 잔인한 이 세계조차 그런 것 같다. 여자들을 사랑하진 않지만, 이들이 존재하게 만드는 토양. <순정 히포크라테스>는 밭은 천장 아래 놓인 여자들이 끝끝내 세계를 살아내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난 고통도 괴로움도 없는 내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평화로운 그 어딘가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복과 불행이 지독하게 섞인 이 삶이 좋아."(시즌2 16화)

 

<순정 히포크라테스> 시즌2 16화 중 (이미지 출처: 카카오웹툰)


그래서 사해는 나아간다.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향상심'과 '호승심'을 품고. 사해는 언제나 능력이 뛰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아지려는 마음도, 이기려는 태도도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사해는 언제나 앞서 포기하곤 했다. 자신을 꺾어 누르는 할머니의 말과 세계의 태도 속에 순종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름처럼 '죽은 바다'였던 것이다.

그런 데다 사해가 몸담으려 하는 의사 사회 역시 만만치 않다. 사해의 외형만 보고 얕잡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사가 되고 나서도 온갖 성희롱을 견뎌내야 한다. 부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순정 히포크라테스>는 사회 르포의 측면도 두드러진다. 사해는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숨겨야만 했고, 여전히 망나니처럼 구는 ‘사달’에게 기를 쓰고 대들지 못한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해가 사달에게 대항할 방법은 다른 남자들을 대동하여 폭력을 회피하는 것뿐이다.

그런 사해를 다시 곧추세워 준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서로를 지극히 사랑했던 '소원'과 자신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엄마를 한평생 보고 자란 '바로', 사해를 한없이 신뢰하고 존중했던 남자친구 '준혁'이다. 특히 소원과 사해의 관계는 특별하다. 소원은 사해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고, 가르치고, 이끌었던 선생님이었으니까. 자신의 이름을 '죽은 바다'라고 소개하는 사해에게 소원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소금 바다 '사해'는 사실 호수이며, "생명의 바다"(시즌2 11화)라고 정정해 주었다. 그 작은 인연을 시작으로 이 둘은 끈질기게 서로를 밀고 당기며 서로를 세계 쪽으로 조금씩 이끌어준다.

<순정 히포크라테스>의 세계관은 지독하리만큼 현실을 참조하고 있지만, 사해를 향한 등장인물들의 사랑만큼은 순정만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바로 그것이다. 사모님이 아니라 아줌마라고 부르라는 소원, 사해의 선택을 존중하는 준혁, 사해를 존경하며 진심으로 사해의 행복을 비는 바로. 캐릭터들의 '순정'만큼은 순정만화 그대로의 감성이다. 사모님이 아니라 아줌마라고 부르라는 소원, 한없이 사해를 존중하는 준혁, 사해를 질투하지 않고 존경해 주는 바로. 사해를 주저앉히지 않고 일어나게 돕는 사해 주변의 인물들은 순수하게 사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건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순정만화의 감성이다. 조건도 목적도 없이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말이다.

모든 순정만화가 공유하는 유일한 클리셰는 사랑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순정만화는 줄곧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서사의 중심이 사랑이 아닐지라도, 순정만화 장르의 작품에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순도 깊은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연을 애써 잊으려 노력하는 무휼(<바람의 나라>)과 샤르휘나를 기다리며 오랜 잠에 드는 에일레스(<아르미안의 네 딸들>)처럼 비극적인 순애뿐만 아니더라도, 좌충우돌 부딪히고 성장하는 동료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오디션>)과 가면 속에 숨은 나 자신을 직면하는 태도(<캥거루를 위하여>)까지도. 순정만화들은 언제나 여러 방향의 사랑을 ‘지극한’ 모습으로 그려왔다. 

그래서 이 만화 <순정 히포크라테스>는 순정만화다. 준혁과 사해의 이성애적 관계 때문이 아니라, 소원과 바로 등 사해를 둘러싼 모든 이의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해를 오랫동안 가르쳤던 소원이 반대로 사해의 손에 조금씩 떠밀리다 결국 의사 가운을 입고 나타난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반드시 이성 캐릭터가 입을 맞추고 포옹해야만 순정만화인 게 아니다. 여태 우리가 보아왔던 순정만화에서 사랑은 그저 그가 원하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 그가 있고 싶어하는 자리에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이루어진다. 

우리는 낡은 세계의 잿더미 위가 아니라
그 세계의 틈새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105쪽

 

<순정 히포크라테스>를 다 읽고 나서는 이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분명 여자들이 서 있는 세계는 참혹하고, 잔인하고, 부당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세계를 완전히 부수고 폭파한 뒤 남은 잿더미 위에서가 아니라, 그 세계의 '틈새'를 기어코 찾아내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 낸다. <순정 히포크라테스>는 그 틈새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게 한 만화다. 내게 필요한 건 미움과 증오로 세계를 박살 내는 일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순전한 사랑으로 서로를 믿어주는 것이라고,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말해주는 작품이니까. 한평생 세계를 미워하며 지내 온 나로서는, 이 만화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글쓴이_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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