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합정만화상

2020년 올해의 합정만화상

합정만화연구학회 2020. 12. 31. 08:47

합정만화연구학회가 2020년부터 매년 연말 '올해의 합정만화상' 선정을 시작합니다.

제 1회 합정만화상은 학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국내 작품 5편, 국외 작품 1편을 선정했습니다. 투표를 거치지 않았으나 학회원 각각이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특별 언급으로 밝혀두었습니다.

코로나만 잔뜩 떠오르는 2020년이지만 바이러스 말고도 기억할만한 값진 활동들이, 만화들이 있었다는 걸 이렇게나마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2020년 '올해의 합정만화상' 선정작

국내 작품

작품명 작가 연재 플랫폼/출판사
극락왕생 고사리박사 딜리헙/문학동네
나의 살던 고향은 선우훈 버프툰
남남 정영롱 다음웹툰
셧업앤댄스 이은재 네이버웹툰
유부녀킬러 검둥, YOON 다음웹툰

국외 작품

작품명 작가 연재 플랫폼/출판사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쓰루타니 가오리 북폴리오

특별 언급

작품명 작가 연재 플랫폼/출판사
문밖의 사람들 김성희, 김수박 보리
안녕 커뮤니티 다드래기 창비

 

 


 

극락왕생 고사리박사, 딜리헙/문학동네

<극락왕생>은 독특한 작품이다. 작품에 담긴 내용뿐만 아니라, 작품이 공개되는 방식까지 모두 흥미의 연속이다. 작품이 구현하는 불교의 세계관은 무척이나 섬세하다 못해,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이미지나 구조를 재현한 작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교한 것은 ‘환생’과 ‘윤회’라는 소재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치밀하게 배치한다는 점이다. 다시 부활한 주인공 ‘박자언’은 결코 막강한 ‘먼치킨’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해 방황하기까지 한다. 새롭게 부여받은 삶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자언은 다시 역설적으로 ‘여정 없는 행로’를 통해 이전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들을 만나고, 그 관계를 통해 자언은 자기 자신만의 세계관을 이룬다.

그 세계관은 결코 완벽하지 못한 개인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각박한 세계에 맞서는 하나의 돌파구를 만드는 통로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구축 아래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도 함께 조화된다. 작가는 이러한 세계관을 만드는 동시에 일종의 오픈 마켓과도 같은 플랫폼인 ‘딜리헙’에 올리며 작품이 외적으로 공개되는 측면에서도 자신의 만의 길을 만들어 갔다. 이런 모습들이 더해지며 <극락왕생>은 끊임없이 싸우고, 고민하는 작품이 되었다. _성상민 만화평론가

 

관련 글

손유진, 극락왕생, 순수에 대한 곧은 믿음, 디지털만화규장각, 2019.10.17.

조익상, 극락왕생-독립 오픈 플랫폼에서 만난 '웹툰의 세계' 《주간경향》 1377호, 2020.05.18

 

 

<나의 살던 고향은> 썸네일 이미지 (출처: 버프툰)

나의 살던 고향은 선우훈, 버프툰

이 작품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선우훈’이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한 자기 서사다. 자기 기록이 쉽게 빠지는 자기 연민의 함정에서 벗어나 내 세계를 기어이 새롭게 써내고 마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다. 아버지가 어릴 때 세상을 뜬 뒤, 작가는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서울에서 정읍으로 이주했다. 서울로 와 미대를 다니고, 만화가가 되고, 결혼 후 또 다른 가족을 꾸리기까지의 그의 삶이 연대기 순으로 펼쳐진다. 


그를 둘러싼 친밀한 사람들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의미 있는 건 그가 ‘나’와 ‘타인들’의 세계 속 위치를 섬세히 살피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내가 약자일 뿐만 아니라 어떤 관계에서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하나하나 점을 찍어 그려낸 선우훈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반짝이는 그림처럼 그가 곱씹고 공들였을 사유의 시간에 존경을 보낸다. _박희정 기록활동가

 

관련 글

박희정, 「나의 살던 고향은」 연민의 함정에서 벗어나 쓴 자기 기록, 《주간경향》 1403호, 2020.11.23 

 

 

웹툰 <남남> 썸네일 이미지 (이미지 출처: 다음웹툰

남남 정영롱 작가, 다음웹툰, 2019~2020

'남남'은 관계가 없다는 걸 관계지어 말하는 이상한 단어다. 앞의 남과 뒤의 남은 개별의 존재이며 그 나름의 이야기를 지녔다. '남남'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연결해 관련 없다고 눙치는듯한 말이다. "남남끼리 만나 부부가 되다.", "부부는 헤어지면 남남이다." 같은 국어사전 예문이 담은 아이러니를 보라. <남남>은 바로 그 아이러니를 혈연, 학연, 지연 속에서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다들 남이며, 다들 연결되어 있고, 또 다들 개별적이라는 거다.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솜씨가 정갈하고 아름답다.  _조익상 만화평론가

 

관련 글
조경숙, 남남-가족이란 유대감을 쌓아 온 ‘각별한 남남’, 《주간경향》 1378호, 2020.05.25 

조익상, 남남-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기억만이라도 해야, 《주간경향》 1402호, 2020.11.16 

조익상, <남남>과 <엄마들>, 그리고 '일상툰', 《지금 만화》 8호, 2020.11.30, 165~169쪽

 

셧업앤댄스 썸네일 이미지 (출처: 네이버웹툰)

셧업앤댄스 이은재, 네이버웹툰

이은재 작가는 감정표현에 탁월한 작가다. 단순히 표정이나 대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특정한 제스쳐나 사소한 습관, 말투 등을 반복적으로 연출하여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깊이있게 표현한다.  그가 주로 묘사하는건 남성 청소년의 세계다. 여성서사가 확장되는 만큼 남성의 세계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남성을 말하기 위해 여성을 타자화하거나 폭력을 경유하는 방식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낡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오히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런 와중 만난 이은재 작가의 작품은 정말이지 소중하다. <ONE>도 <TEN>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셧업앤댄스>는 더욱 각별하다. 이 만화는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실패하는 이들을 그려내는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어떻게 응원하는 동료가 되는지를 조명한다. 이은재 작가 특유의 섬세한 내면 연출이 이 따뜻한 서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_조경숙 만화평론가


관련 글
 

조경숙, 셧업앤댄스-성장과 성취 대신 연대와 사랑을, 《주간경향》 1410호, 2021.01.11. (발간 예정)

 

유부녀 킬러 썸네일 이미지 (출처: 다음웹툰)

유부녀 킬러 검둥/YOON, 다음웹툰

시집살이에 고생하는 며느리이자, 만 3세 된 아이를 키우면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고군분투하는 ‘유보나’. 사실, 그녀의 진짜 정체는 저지른 죄에 비해 턱 없이 적은 형량을 받은 사람들을 죽이는 킬러 ‘킹피셔’이다.  

웹툰 <유부녀 킬러>는 유보나가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겪는 일들을 그리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 역할의 고정 관념을 고발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보나가 일하고 있는 두루미 전자 영업 3팀의 활약상을 그리면서 ‘법이 심판하지 못한 이들을 심판하는 것이 정당한가’ 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팀 내 에이스의 역할로서 남녀 성 역할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유보나의 활약상이 그려진다. 가벼운 필치로 유보나의 일상을 그리면서, 묵직한 질문들을 함께 던지는 작가의 천연덕스러움이 이 웹툰의 가장 큰 장점이다. _박범기 만화평론가

 

관련 글
조경숙, 유부녀 킬러-범죄자를 찾아가 단죄하는 '법 위의 심판자', 《주간경향》 1390호, 2020.08.17.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쓰루타니 가오리 / 현승희 옮김, 북폴리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 사야미와 75세를 맞이한 노인 이치노이 유키는 그렇게 큰 접점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게 개별적인 존재로 끝날지도 모를 두 명을 하나로 묶은 것은 우연히 이치노이가 그림체에 반해 존재를 알게된 BL 만화이다. BL에 대해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수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중요한 것은 BL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일군의 여성 창작자나 독자들이 쉽게 침범받지 않는 ‘자신만의 장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그 지점에 주목하며 BL와 다시 BL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누군가 보기엔 유치하거나 이해가 안 될지 몰라도, BL을 비롯해 오랜 시간 형성된 하나의 장르들은 곧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특정한 장르에 대한 애정은 서로의 표현을 변화시키고, 다시 서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낸다. 어떤 의미로는 ‘덕질’, 또는 매니악한 접근이 뻗어나갈 수 있는 바람직한 길을,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받아들이는 길을 보인다는 점에서 작품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_성상민 만화평론가

관련 글

안지혜, 'BL만화 읽는 할머니'...다양한 노년 여성 서사, 일다, 2020.03.16.

황순욱,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 《주간경향》 1396호, 2020.09.28.


특별 언급

 

김성희, 김수박, <문밖의 사람들>, 보리출판사, 2020

<내가 살던 용산>, <먼지 없는 방>, <사람냄새> 등의 작품으로 '르포만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던 작가 김성희와 김수박이 다시 뭉쳤다. 이번에도 이 둘이 바라보는 문제는 ‘산재’이다. <문밖의 사람들>은 6명의 청년 노동자들이 스마트폰 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사건을 주목한다. 이 작품은 왜 이들이 이런 열악한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다시 이들이 정당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싸우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문밖의 사람들>은 불안정한 노동으로 계속 밀려나가게 되는 청년들의 현실을 짚는다. 그리고 몇몇 이들에게는 ‘시위꾼’이라는 멸칭으로 쉽게 낙인 찍히는 ‘활동가’들의 삶을 중요한 한 축으로 짚으며, 작품은 산재가 발생하는 종합적인 원인과 함께 누가, 어떻게 이들과 함께 투쟁을 하는지를 함께 주목한다.
_성상민 만화평론가

 

 

 

 

다드래기, <안녕 커뮤니티>, 창비, 2020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던 동안(2016~2019)은 눈여겨보지 않다가, 단행본으로 나오고서야 제대로 만났다. 놀라운 작품이다. 2020 올해의 합정만화상에 선정되지 못한 건 단지 연재 시기가 그 이전이었기 때문!!

가깝다고 방심하지 않을 것, 멀다고 소홀하지 않을 것, 혼자와 모두를 이어낼 것. <안녕 커뮤니티>의 이야기하기가 견지하는 자세를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독특하고 정갈한 작화도 같은 자세로 개개의 얼굴과 표정을 세심하게 그린다. 
_조익상 만화평론가

 

관련 글
지덕재, ‘안녕(安寧)’한 풍경에 가닿기 위한 어떤 상상력, 《디지털만화규장각》, 2019.1.22

조익상, 코로나 사회서 우린 어떻게 연결되나, 《주간경향》, 1409호, 2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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